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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테야의 인문학
메테야의 노트

폭력의 법칙, 삶의 반작용

by metteyya 2025. 9. 1.


8월 마지막 일요일~~

마침 눈이 일찍 떠짐 왠일??  그런차에

25년 여름을 보내는 기념으로 영화한편을 볼까싶어서  넷플릭스를 서성였다.

그러다가 선택한 《약한영웅 Class 2》.

한 편 한 편 보다가 자리를 일어날 수 없을 만큼 몰두되어 하루 종일 시리즈를 완독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액션과 대사도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사건과 상황 속에서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장면, 나백진의 장례식.
그곳에서 아이들이 서럽게 울던 모습은 알 수 없는 뭉클함으로, 먹먹한 울림으로 내 가슴을 쳤다.

 

만약 이 세상이 단순히 약육강식의 법칙으로만 굴러간다면,

그의 죽음은 기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강자가 무너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통증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니

그 눈물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을 향한 슬픔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갉아먹던 우리가 결국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확인하는 절규였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은 단순히 힘의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수 있었다.
우리는 승리의 자리에서도 눈물을 흘리고, 상대의 몰락 앞에서도 가슴이 저려온다.
그리고 그 아픔과  희생 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요즘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도 비슷한 공기를 느낀다.
큰소리로 드러나는 싸움은 없지만, 인사를 흘려버리는 무심함,설명되지 않는 거리감이 은근히 벽처럼 다가온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힘의 법칙이 작동한다.
누군가는 힘을 행사하고, 누군가는 그 힘에 눌려 고통을 견딘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이며,

그 안에서 내가 승화해내어야 할 것이 있을것이다.

작용-반작용으로 단순히  내가 적대로 반응할것이  아니라

어떻게 아픔을 언어로 바꾸고, 다시 일어서 낼  것이가 하는 물음이다.

 

《약한영웅》은 그래서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너는 이 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적대의 고리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화합시작을 만들어낼 것인가.”

 

 


뉴턴의 제3법칙  작용 반작용법칙.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도 이 법칙은 늘 작동해왔다.
누군가의 부당한 언행이 내게 다가올 때, 나는 견디고, 때로는 맞섰으며,

또 때로는 침묵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내게 되돌아왔다.

억울함은 분노로, 분노는 글과 목소리로 바뀌었고,

그 파장은 또 다른 반작용이 되어 내 앞을 가로막곤 했다.


“네가 던진 힘은 반드시 네게 돌아온다.” 나는 이 진리를 수없이 경험하며 살아왔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도 이 보이지 않는 힘의 법칙은 여전히 작동한다.


희생 위에 세워지는 깨달음.

 

그래서 나백진의 죽음은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단순히 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구조 속에 갇힌 하나의 아이였다.

살아남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결국 그 반작용은 자기 생명을 앗아가는 무게로 돌아왔다.
장례식장에서 흘린 눈물은,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결국은 닮은 존재였다”

는 인간적 진실을 드러냈다.

 

내가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도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의 부당함, 사회 속 모순, 관계에서의 상처…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어떤 작용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반작용을 안고 살아왔다.

때로는 무너졌고, 때로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모든 반작용이 남긴 흔적 위에 서 있다.

 

《약한영웅》은 결국 내게 이렇게 묻는다.
“너는 그 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폭력의 고리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낼 것인가.”

나는 이제 알겠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속에서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그 길은 폭력이 아니라,

쓰러진 자를 기억하고,

아픔을 언어로 승화시키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 속에 있다.

 

나백진의 죽음이 남긴 여운은 그래서 오래 간다.
그는 떠났지만, 남겨진 아이들의 눈물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우리의 깨달음은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남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며,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