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바가 항상 문제여서 내가 직접 뽑은 인력이 이번 알바쌤이다
그랬기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구보다 잘해줬다.
실수하면 다독였고,
사과할 필요 없는 일에도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퇴근을 시켰다
상처받을까 봐,
기분 상할까 봐,
늘 조심조심 마음을 썼다.
하지만 그 사람은
제일 가깝게 내 심정을 이해하고 있을줄알았는데
사소한 지적한마디에
대표에게만 말한후
점검을 이틀 앞둔 날
무단 퇴사해버렸다.
그리고 연락도 전화도 톡도 차단해버렸다.
시작은 이랬다.
한 어르신이
"왜 나는 물품을 안 주느냐"며
팀장이 내게만 전화도 없고 물품도 안주고 한다고 하시면서 항의를 했고
어르신은 아직 지급 대상이 아니었기에
못 드린거라고 사정을 설명을 했다.
그런데 알바쌤이 내가 주겠다며 그 어르신에
물품을 줘 버렸다.
헐~
화가 났지만 억누르면서 단호하게 말한다는게
목소리가 커졌는지는 모르지만
이런경우 내게 먼저 상의를 해야한다고
나는 알바쌤에게 주의를 주었고
그 알바쌤은
대답을 회피하며 대꾸를 해서
다시 확실하게 단호하게 상의하라고 말해줬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는 '지적'이 되었고,
나는 한순간에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한 일은 단 하나다.
정확하게 조직의 룰을 이야기 했을 뿐이다.
“어르신이 자기가 물품을 받을 순번이 아닌걸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 상황에 화가 났을 뿐이라고”
이해를 구하며
진심으로 풀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알바쌤은 그동안의 노력이고 정이고를 다 팽겨치고
싹~다~차단하고 쌩하니 집으로 가버렸다.
내 마음에
아주 깊은 칼자국 하나 남기고 떠나버렸다.
나는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또 내게 생긴 걸까.
왜 늘
무너진 자리를 메우는 사람이 나일까.
엎치고 덥치고 그 위로 또 덮어 눌러도
나를 1도 이해해주려는 사람이 없다.
휴~~
허탈한 멍때리기
그러다~
마음 깊은 데서 떠오른 단어 하나.
K-장녀.
어릴 적부터
참아야 했고,
양보해야 했고,
다 이해해야 했고,
다 내가 거둬 먹어야 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잘해주는 게 습관이었고,
힘든일은 항상 내몫이였고 나의 일을 죽을 힘을 다해서 하고 나면
당연히 남의 일까지 죽을 힘을 떠 짜서 도와야 하는게 당연시 되는 나였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내게 기대기만 했다.
힘들면 나를 불러서 시키고,
힘들면 내일을 도우는 사람을 불러서 본인일을 시켰으며
힘들면 내가 들고 있는 도구 뺏어 본인들이 지꺼인양 좋으니 나쁘니 비아냥거리며 사용했다.
나는 늘 주는 사람이었고,
그 에너지는
한 번도 나에게 되돌아온 적이 없었다.
마치
에너지 공명처럼
모든 책임과 감정의 무게가
늘 내 쪽으로만 쏠린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나는
항상 외롭고
항상 아프고
항상 짓눌리면서
병들어 갔다.
이번에도 그랬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그래야만 조직의 질서가 잡힌다.
그리고
나는 오해가 없도록 설명까지 했다.
그런데
돌아온 건
무단이탈, 연락 차단,
그리고 허탈한 침묵뿐이다.
점검은 코앞이다.
그 사람의 빈자리를 내가 채우면 된다.
그 어르신의 서운함도 내가 풀어주면 된다.
그런데 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결국
모든 걸 짊어진 채,
오늘도 출근해서 일하고 있다.
이제는 나도 묻고 싶다.
"내가 이 모든 걸 짊어질 이유가
정말 나에게만 있었던 걸까?"
'조직의 분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내의 한계 (4) | 2025.07.26 |
|---|---|
| “상처만 남았다 – 그래서 나는 현명한 거리두기를 선택한다” (2) | 2025.07.25 |
| 참는 사람이 희생자가 되는 구조, 그게 이 사회다. (5) | 2025.07.23 |
| 《벼랑 끝의 주말 근무》 (0) | 2025.07.05 |
| 투쟁해야 하는 삶-더러운 삶 (8) | 2025.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