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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테야의 인문학
조직의 분노

인내의 한계

by metteyya 2025. 7. 26.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매일 성실하게, 때로는 몸이 아파도 웃으며 버텼고,
어르신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알바의 실수도 내 책임처럼 감춰주며 처리했다.


그래야 일이 굴러가니까.
그래야 조직이 덜 흔들리니까.

그렇게 나는
공정한 평가보다 '관계'를 더 중시하는 조직 속에서
조용히 희생했고, 묵묵히 성과를 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성과 없는 이들의 불만을 대신 들어주는 시스템.
결국 나는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성실함은 ‘오지랖’으로,
책임감은 ‘착취의 빌미’로 바뀌었다.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내도
그 성과의 공정한 보상은 없었고,
오히려 그 성과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 사람들과의 ‘균형’을 위해,
성과낸 사람은 ‘조용히 사라져야’ 했다.


그래서 나는 바보가 되었다.
일을 잘한 바보, 더 많이 떠안은 바보, 결국 빼앗긴 바보.

 

대표는 성과를 원한다.


무엇보다도 ‘큰 성과’를 통해 조직을 키우고
그에 따른 수익을 얻는 데 가장 관심이 있다.
성과를 중시한다면,
성과를 만든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과 대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혹사당했고, 대접받지 못했다.


성과는 필요하지만,
그 성과를 낸 사람은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구조 속에 있었다.

 

알바의 사례는 그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표는 알바가 하루라도 적게 일하면
그만큼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그래서 알바가 무단으로 이탈하고,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아도
‘계약만료’로 처리해준다.

 

겉으로 보기엔 배려인 척하지만,
실상은 조직의 손해를 피하기 위한 계산이다.
대표는 알바와 상의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았음에도
고용보험을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

 

그러는 동안
알바비는 아끼면서,
현장의 책임을 짊어진 팀장의 업무 과중과 피로,

고생에는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성실하게 버틴 사람의 무게에는 침묵하면서,
무책임하게 떠난 사람의 권리만을 보호해주는 구조.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고용보험 부정수급에 해당할 수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중도 퇴사한 알바가
‘계약만료’로 둔갑하여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것이라면,
그 책임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돌아간다.


나는 이 구조를 국가에, 고용노동부에 알릴 책임이 있다.


정직하게 일한 사람은 벌을 받고,
계약을 어긴 사람은 혜택을 받는 현실.


이것이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구조 속에서
조직은 더 이상 ‘성과’를 바라지 않는가?

성과는 회사의 것이고 직원은 결국은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희생’을 원할 뿐이다.


묻고 싶다.

 

나는 왜 바보 취급을 받아야 했을까.
나는 정말 바보였던 걸까,
아니면 모두가 알고도 외면한
‘지혜로운 바보’였던 걸까.